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외주 SW 개발의 비극

열악한 소프트웨어 외주 개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가 3D 취급을 받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갑을병'으로 이어지는 외주도 모자라 '갑을병정무'까지 3,4단계 외주를 주기도 한다. 하청에 재하청이 이어질수록 열악한 댓가와 무리한 일정 그리고 부정확한 요구사항은 외주 개발을 점점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소프트웨어 외주 개발 문제를 얘기하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 접해 본 사례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공학과개발 문화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A사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서비스 개발을 야심차게 인도에 외주를 줬다가 큰 낭패를 봤다. 

지금도 왜 인도에 외주를 줬는지 궁금하지만 추측컨데 실리콘밸리 외주 형태를 흉내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인도 개발사는 개발 완료 후 L사에서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전달해왔다. 프로토콜도 완전히 다른 것이고 도저히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스펙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 개발사에 전달된 스펙은 간단한 기획서 수준이었고 프로토콜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 개발사가 소프트웨어를 완성해서 전달할 때까지 중간에 제대로 점검을 하지 않았다. 

한국 업체 같으면 억지를 부려서 잔금을 안주면서 다시 개발을 강요 했겠지만 인도 개발사는 계약대로 개발을 했고 억지는 통하지 않았다. 잔금을 안줄 수는 없었다. 결국 인도 개발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모두 버리고 다급하게 한국업체를 통해서 다시 개발을 했다. 돈은 돈대로 더 들고 서비스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B사는 1년이 넘는 꽤 긴 프로젝트를 제대로 된 스펙도 없이 외주를 주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외주 개발사에는 핵심 기능을 정리한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요구 사항 문서가 전달된다. 외주 개발사는 전체 프로젝트 기간 중 20~30% 정도 기간 안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남은 70~80% 기간은 B사의 요구대로 거의 매일 소프트웨어를 수정하고 보여주기를 반복해야 한다.

외주 개발사는 해당 분야의 전문 회사라 이런 부정확한 요구사항으로도 대충 B사가 원하는 것을 이해해 개발할 수 있었다. 개발사의 PM은 수시로 고객사에 불려가 요구사항 변경 회의를 해야 했고 소프트웨어를 계속 고쳐나가기 때문에 아키텍처를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막판에 요구사항이 크게 바뀌어서 다 버리고 다시 만드는 일도 발생했다. 외주 개발사는 비용도 과도하게 투입해야 하고 프로젝트 관리를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B사가 가장 큰 고객이므로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B사는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아직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C사와 D사는 소프트웨어 개발 외주가 제대로 진행이 안돼 외주사 개발자를 회사 내부에 앉혀 놓고 같이 개발하는 형태로 개발을 한다. 

외주 프로젝트지만 옆에서 같이 개발하지 않으면 제대로 개발이 안되기 때문에 같이 일해야 한다. 옆에 앉혀 놓고 개발한다 뿐이지 개발 방식은 다른 외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요구사항은 계속 변하고 애써 작성한 코드를 버리고 고치기를 반복해야 한다. 

외주사도 이런 방식이 비효율적이라서 원하지 않지만 고객사의 우월한 지위를 꺽을 수가 없고 이렇게 일하다 보니 외주 개발 내용 외에 그냥 직원처럼 부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D사는 외주를 줬다가 소스코드가 없어져서 소프트웨어를 버려야 했다. 

D사는 소스코드를 받을 수 없는 외주 계약으로 개발을 했다. 처음 몇 년은 유지보수를 잘 했지만 몇 년 후 외주 개발사는 망해서 없어졌다. 그 과정에서 소스코드가 D사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최신 소스코드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외주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모두 버리고 다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E사는 개발자가 해야 할 개발자 테스트를 외주업체에 맡긴다.

개발자는 열심히 코딩만 하고 옆에 앉아서 외주개발자가 기본적인 개발자 테스트를 해준다. 속된 말로 '따까리'라는 말이 적합하다. 비싼 자사 개발자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는 하지만 자칫하면 잘못된 개발 습관이 쌓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해서는 코드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완벽한 로직의 코드인지는 개발자 본인이 가장 잘 확인 할 수 있는데 대충 만들고 발견된 문제만 해결하는 방식이 습관화 될 수도 있다. 개발자는 완벽한 소스코드를 적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이런 개발자의 의무를 망각하면 프로그래밍은 기초부터 흔들리게 된다. 

위에서 살펴 볼 수 있듯 외주 문제의 주된 원인은 부실한 스펙이다. 모호한 요구사항 정도로 계약을 하게 되니 중간에 요구사항이 계속 바뀌어도 어쩔 수 없고 프로젝트 종료 기준도 모호하여 담당자 맘에 안들면 잔금을 받기도 어렵다. 소송도 종종 일어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소송을 해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고객이 대기업인 경우 소송을 하기도 쉽지 않다. 스펙을 제대로 적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외주 개발을 하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직접 개발할 수는 있는데 내부 인력이 부족할 때와 특정 요소기술을 내부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을 경우다. 내부에서 개발할 수 없을 만큼 잘 모를 때는 외주를 주기도 어렵다. 모르는 상태에서 대충 외주를 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어렵고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외주 개발사와 협업을 잘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하다. 제대로 외주를 주기 위해서는 고객도 스펙을 제대로 적을 수 있을 만큼 잘 알아야 한다. 

부품 업체 다 망하고 나면 자동차 회사도 망하듯이 수많은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망하고 나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도 망하는 것이당연한 수순이다. 대만이 자전거 산업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이유는 자전거 부품회사와 꾸준히 상생을 해와서 대만에는 뛰어난 자전거 부품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생산비 절감에만 몰두한 우리나라 자전거 산업은 전세계 자전거 산업에서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이미 많은 중소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사라졌거나 고사 상태인 지금 자전거 산업과 비슷한 미래가 예상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말로만 베풀듯이 상생이라고 외치는 것은 들을 때마다 거북하고 막상 그 내용도 해결책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이 3D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라면 이런 열악한 외주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SW를 을로 취급하는 하드웨어의 무지

필자는 펌웨어를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 팀과 같이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자주 만난다. 그런데 많은 개발자들이 하드웨어 팀과 일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회사에서 하드웨어에 더 집중하고 투자하며 소프트웨어는 보조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지만 많은 회사들이 하드웨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수적인 역할로 생각하곤 한다. 

'소프트웨어' 하면 흔히 데스크톱 소프트웨어나 게임, 모바일앱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순수 소프트웨어, 즉 하드웨어에 종속적이지 않은 소프트웨어 비중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반대로 하드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프트웨어 비중은 의외로 크다.

자동차의 예를 들면 현재 최고급 차량의 생산 원가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이 되면 고가 차량을 넘어 전체 자동차 생산 원가에서 소프트웨어 비중이 50%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과거에 하드웨어로 수행하던 기능이 점점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고 그러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기능이 실현 가능해져서 하드웨어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펌웨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하드웨어와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소프트웨어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하드웨어에서도 소프트웨어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하드웨어 자체 성능에도 소프트웨어가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측면으로 보면 조만간 하드웨어 경쟁력도 소프트웨어 역량이 좌지우지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될 날이 몇년 남지 않았다. 

즉, 간단하게 얘기해서 앞으로는 소프트웨어를 잘해야 자동차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늦게 산업화되었지만 몇몇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았거나 앞질렀다. 자동차, 반도체, 선박, 휴대전화, 가전, 디스플레이, 플랜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소프트웨어 선진국과 비교하여 아직 멀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후가 되면 소프트웨어 역량이 하드웨어 경쟁력을 판가름한다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선진국에 더욱 뒤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그나마 따라잡고 앞지른 분야까지 내놔야 할 상황이 될 것이다. 

실제 성공한 하드웨어 중심인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을 보면 문제가 많다. 하드웨어 개발팀이 우위를 가지고 소프트웨어 팀은 시키는 대로 개발하는 방식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A사는 하드웨어가 이미 설계된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는 거기에 맞춰서 개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팀 관점으로 봤을 때 하드웨어 설계에 문제가 있어도 소프트웨어가 우회 방법을 찾든지 해서 재주껏 해결해야 한다. 하드웨어 설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제대로 참여를 못해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A사는 하드웨어는 변경이 어렵지만 소프트웨어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으니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맞춰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버그가 발견되면 무조건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하고 하드웨어 문제도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욕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먹는다. 

기획 단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의견을 들을 기회조차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잘 모아질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하드웨어 중심적인 개발에서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도 않는다.

B사는 모든 개발 일정이 하드웨어에 맞춰져 있다. 하드웨어 개발팀은 소프트웨어 개발팀과 개발 일정을 논의하지도 않는다. 이미 단계 별로 하드웨어 개발 및 양산 일정이 정해져 있으니 소프트웨어는 각 단계 별로 어떤 것은 1주일 어떤 단계에선 3주 안에 하드웨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무조건 만들어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인터페이스를 맞추거나 에뮬레이터를 통해서 미리 개발을 하고 싶지만 미리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해 하드웨어 일정에 맞추느라고 항상 야근에 시달린다. 하드웨어 부서 일정이 바뀌면 소프트웨어 개발 일정도 틀어져서 일정을 조율하기가 매우 어렵다. 

C사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도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맞춰져 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를 개발할 때 한 두명의 개발자가 밤세워가며 펌웨어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도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넣는 방식은 그대로다.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는 있지만 소프트웨어에는 없는 것도 있고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소프트웨어는 알파, 베타 단계가 있지만 하드웨어는 그렇게 고쳐 나가지 않는다.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억지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끼워 맞추다 보니 매우 비효율적으로 되어 있다. 용어들도 상이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적응해서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프로세스임은 명백하다. 

D사의 경우 소프트웨어 기술 책임자가 하드웨어 출신이다. 

이같은 상황은 업계에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전문가가 아니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콜라를 팔던 경영자가 TV 파는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아무리 잘 하던 사람도 소프트웨어 조직의 기술 책임자가 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의 소프트웨어 부문 CTO(Chief Technical Officer)가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아니거나 CTO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하드웨어 출신이 소프트웨어를 맡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출신이라고 해도 중간에 관리자로 넘어가서 이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이 CTO를 맡기도 한다. 

경영자에게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요구하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경영자들은 추진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 많이 밀려 났고 이제는 소프트웨어 조직도 전혀 다른 분야 출신의 불도저 같은 사람이 맡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영자들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는 고작 끊임없는 야근이다. 단기적인 성과는 날 수 있지만 아키텍처는 엉망이고 개발자들은 지치고 개발 문화는 엉망이 되었다.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기적적인 하드웨어에서의 성공을 회상하며 소프트웨어도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 큰 착오다. 하드웨어에서 성공했다고 그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소프트웨어는 스타트업을 제외하고는 한두명의 천재가 밤을 세워서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부속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나마 그 동안 이룩했던 우위를 잃지 않으려면 소프트웨어가 '을'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드웨어와 동등한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한국 SW가 해외에서 힘 못쓰는 이유

01/02/03은 몇년 몇월 며칠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2001년 2월 3일로 읽지만 미국사람들은 2003년 1월 2일로 읽는다. 이것이 다 일까? 호주사람들은 2003년 2월 1일로 읽는다. 이렇듯 나라마다 날짜를 쓰는 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번역, 날짜, 숫자, 화폐, 단수/복수, 어순, 쓰기 방향, 키보드배치, 폰트, 띄어쓰기 여부, 쉼표, 온도, 문장정렬, 이름, 주소, 색깔의 의미, 섬머타임, 종이 크기 등 지역, 언어별로 다른 것들은 수천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나라마다 언어마다 다른 특성을 소프트웨어도 각각 다르게 지원해야 한다. 이를 소프트웨어 국제화와 지역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많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된 국제화 전략 없이 개발돼 해외에서 외면받는 일이 많다. 

그 중에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항목들이 버그로 보고 된다. 어설프게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다. 일단 국제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용어를 알아보자.

첫 번째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다. 영어 줄임말로 i18n이라고 한다. ‘i’와 ‘n’사이에 18글자의 알파벳이 있다. 단어가 워낙 길어 이렇게 짧게 줄여서 얘기한다. 소프트웨어를 여러 나라 언어를 지원하기 쉬운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국제화가 잘된 소프트웨어는 쉽게 여러 나라 언어를 지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역화(Localization)다. 줄여서 L10n이라고 한다. 소프트웨어를 특정 지역의 언어를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어나 일본어를 지원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국제화라고 하면 누구나 알 것 같은 용어지만 기술적으로 자세히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많은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국제화에 대한 정교한 전략 없이 일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놓고 국내에서 반응이 좋으면 번역을 해서 해외에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화를 미리 대비한다고 해도 국제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실제 해외 판매 시 많은 문제를 겪는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많은 나라에 팔기 위한 전략과 기술은 수십 년간 발전해 왔는데, 많은 개발자나 경영자들은 단순히 메뉴 정도만 번역하면 되는 정도로 이해를 하고 국제화에는 별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소프트웨어 국제화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개발자가 수천명인 대기업부터 1인 스타트업까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 중에서 국제화를 제대로 알고  적용하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대부분 국제화가 그렇게 어려운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방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비주얼스튜디오나 엑스코드(XCode) 등 각 개발 툴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국제화 방법은 그야말로 기초 중에 기초이며 이것만 이용해서 대규모 상업용 소프트웨어의 국제화를 완성할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은 마트의 시식코너 같은 것인데 이것이 전부인줄 알면 오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글로벌 소프트웨어들은 국제화가 매우 잘 되어 있고 지역화를 통해서 수십, 수백개의 언어를 지원한다. 기술적으로는 지역과 언어를 합친 로케일(locale)을 지원한다고 한다. 

소프트웨어를 처음 개발할 때부터 국제화를 제대로 적용하면 개발비용이 5%만 더 들어간다. 추후 지역화 비용은 각 언어별로 1~2%정도만 더 쓰면 된다.

제품마다 비율은 다르지만 대충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하면 그 정도다. 여러 언어를 지원하더라도 개발자들이 특별히 해줘야 할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자동화된다. 국제화가 잘 된 소프트웨어는 추가로 몇 개의 언어를 지원하더라도 큰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급하다고 또는 무지 때문에 국제화에 대한 전략 없이 그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처음에는 5% 절약은 되겠지만 나중에 여러 언어를 지원하려고 할 때 수십 ~수백배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용도 점점 늘어난다. 

물론 나라별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면 되지만 그러면 제품 품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사례에 따라서 비용 부담의 편차는 다르지만 허술한 국제화에 대한 전략이 미치는 폐해는 엄청나다. 많은 회사들이 어설프게 여러 언어를 지원하다가 포기하거나 결국 실패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소프트웨어 국제화를 처음부터 제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 국제화 시 고려해야 할 것이 수백 가지인데 일반 개발자들은 대부분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며 들어 봤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것들이다. 

소프트웨어 국제화는 관습, 문화적인 것도 이해를 해야 하지만 기술적인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제화를 위한 수많은 기술이 수십 년간 연구되어 왔는데 이를 다 이해하는 것만도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벅찬 일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국제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회사들은 어떻게 국제화에 실패했는지 실제 사례를 알아보자.

E사는 초기에 한국어만 지원하도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런데 일본어 버전이 필요할 때 한국어 버전을 복사해서 번역을 할 경우 한 달이면 일본어 버전을 만들 수 있고 나름대로 국제화를 적용하려면 두 달이 걸린다는 개발자들의 의견에 경영진은 빠른 개발을 선택했다.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은 소스코드가 갈라졌고, 매번 개발 시마다 양쪽 소스코드에 각각 기능을 적용했다. 두 소스코드는 점점 달라졌다. 이제는 너무 달라져서 두 소스코드를 다시 합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런 식으로 중국어 버전까지 나오다보니 비효율적인 개발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 

S사는 웹서비스 회사다. 처음에는 국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였는데 몇 년전 해외에도 서비스를 오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 서비스를 시작할 때 별 계획 없이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를 한국어(EUC-KR)로 입력해 놓았다.

전세계 모든 언어를 지원하려면 유니코드로 저장해야 한다. 글로벌 서비스를 위해서 데이터를 유니코드로 변환하려고 했는데 데이터베이스만 변환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얽혀 있는 것이 너무 많고 소스코드를 너무 많이 바꿔야 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데이터베이스 변환 계획은 포기했다. 

C사는 국내 서비스를 해외 서비스로 확장하기 위해서 해외 버전을 별도로 개발했다. S사와 마찬가지로 별도 개발하는 것이 더 빨리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해외 서비스 오픈 후에 발생했다. 이중으로 작업을 하다가 팀을 나눠서 각각의 서비스를 따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은 점점 비효율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느라고 해외 서비스는 제대로 개발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A사는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국제화 기능을 구현했다. 각 언어의 메시지를 데이터베이스에 넣어 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개발자는 코딩을 하다가 메뉴 등 메시지를 하나 추가하려면 많은 일을 해야해서 부담스럽다. 

메시지를 추가하려면 먼저 엑셀에 해당 메시지를 추가해야 하는데 다른 개발자가 동시 수정하면 충돌이 일어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메시지 관리 담당자를 따로 정해서 관리했다. 그러다보니 관리부담만 늘고 개발자들은 매번 담당자에게 요청하느라 매우 불편해졌다. 

국가별 날짜포맷도 연구해서 직접 개발을 했다. 국제화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A사는 해외 고객들로부터 계속 수많은 국제화 관련 버그를 보고 받고 있다. 

I사도 국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사 제품은 한국어의 특징을 살려서 제품 유저인터페이스(UI)가 상당히 조밀하다. 한국어는 단어 길이가 짧은 것들이 많다보니 메뉴, 옵션 화면 등을 상당히 빽빽하게 구성됐다.

이런 화면을 영어, 독일어로 변환하다 보니 언어별로 메시지 길이가 천차만별이라서 화면 구성에 애를 먹었다. 결국에 화면을 언어별로 다르게 디자인했는데 그렇게 개발한 후로 개발할 때마다 언어별 화면을 튜닝 하느라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N사는 언어별로 번역을 해서 소프트웨어를 여러 나라에 팔고 있다. 그런데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버그를 많이 보고 받았다. “A의 B”를 변역 해야 했고 A와 B는 다른 단어로 대체 가능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을 하니 “A of B”처럼 어순이 뒤바뀌어 의미가 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사과 2개”를 영어로 번역을 하니 “2 apple”과 같이 복수 처리가 안되었다. 복수 지원을 위해서 복수 메시지 함수를 만들었는데 언어마다 단수, 복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도 구조적인 번역 오류에 대한 보고는 계속 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실패 사례를 알아 봤는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소프트웨어 국제화의 필요성을 인식 못하고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해외에 소프트웨어를 팔 계획을 가지고 있고 영원히 영어만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것이 아니라면 국제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회사 내부에서 1, 2년만에 전문가를 키우기도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마다 필요한 국제화 수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소프트웨어 국제화를 쉽게 생각하다가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국경과 문화의 장벽에 막혀서 실패하는 일은 계속 될 것이다.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있어서 소프트웨어 국제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고객이 SW를 망친다

우리나라는 고객이 소프트웨어와 개발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와는 다른 잣대로 우리 소프트웨어 회사를 대하는 이중성 때문에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는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이런 현상이 꼭 고객 탓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다 보니 고객들은 여기에 길들여진 측면도 있다.

이렇게 고객이 소프트웨어 환경을 망치고 있는 실제 사례들을 알아보자. 

A사 고객들은 참을성이 없다.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발견되면 당장 고쳐달라고 막무가내 식으로 요구한다. A사는 팩키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때문에 개별 고객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당장 고쳐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계획되지 않는 급한 수정을 핫픽스(Hotfix)라고 한다. A사는 특정 몇몇 고객 때문에 핫픽스를 과도하게 많이 만드느라 계획된 개발 일정에 지장이 생겼고 소스코드도 지저분해졌다. 

하지만 A사 고객들도 외국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대부분 그런 요구는 들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B사는 소프트웨어 버그로 인해서 개발자가 고객사에 방문 사과를 한적이 있다. 

B사 고객들은 소프트웨어 버그가 발견되면 개발자를 죄인 취급한다. 가끔은 심각한 버그가 발생하면 개발자의 방문사과를 요구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에 B사는 상황을 쉽게 모면해 보려고 개발자에게 고객을 방문해서 사과할 것을 지시했다. 

개발자는 어쩔 수 없이 사과 방문을 했고 개발자로서 회의를 느꼈다. 사실 버그 없는 소프트웨어는 없고 버그가 개발자만의 책임도 아니다. 개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공동 책임인데 아직도 버그의 모든 책임은 개발자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를 타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차 만든 사람이 와서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개발자에게 버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C사는 개발자들이 고객 옆에서 개발을 해야 한다. 

C사는 솔루션 회사다. 자사 솔루션을 이용해서 고객 요구대로 커스트마이징해서 개발을 해준다. 그런데 주로 고객들은 자사 담당자 옆자리에서 개발을 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개발자들은 다니는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여러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환경도 더 좋다. 

그런데 고객이 방문해서 개발을 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스펙도 정하지 않고 옆에 앉혀 놓고 이러쿵저러쿵내키는대로 요구사항을 말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요구사항이 많이 바뀌어서 지우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물론 외국 경쟁회사는 이런 요구에 콧방귀도 안뀌기 때문에 C사는 이런 방문 개발 방식을 강점으로 내세워서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을 이뤄냈다. 하지만 성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과거의 방식을 버려야 더 점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방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고객보다도 개발자들이 이 방식에 익숙해져서 내부 개발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D사도 고객사에 방문해서 개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유가 약간 다르다. 고객이 보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고객사에 방문해서 개발할 수 밖에 없다. 고객사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다. 개발은 모두 고객사에서 해야 하고 고객사를 나올 때는 몸밖에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회사도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와는 이렇게 일하지 않는다. 고객의 이중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E사는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E사는 솔루션 회사인데 납품 후에도 지속적인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간다. 버그 수정 및 기능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고객은 무상 유지보수를 요구해서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심지어는 버그를 고치는데 왜 돈을 받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E사의 고객들도 외국의 소프트웨어를 쓸 때는 군말 없이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한다. 외국 소프트웨어를 쓸 때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라 하더라도 워런티 계약을 따로 한다. 워런티 비용은 소프트웨어마다 다르지만 매년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의 10%~50%를 지불한다. 

1년간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아도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3년간 워런티 계약을 하지 않다가 4년째 문제가 발생해서 지원을 요청하려면 4년치 워런티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는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지만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는 매우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F사 고객이 말도 안되는 문서를 수십 종 요구한다. 

F사는 SI회사다. 대부분은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에 꼭 필요한 문서는 아니다. 단지 고객이 제시하는 방법론에서 필요한 문서일 뿐이다. F사는 실제로는 고객 프로세스대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는 소프트웨어를 주어진 시간에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은 그냥 평소대로 하면서 문서만 추가로 따로 만든다. 문서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다보니 너무 번거로워서 나중에는 문서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서는 프로젝트 도중에도 프로젝트 후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냥 검수를 통과하기 위한 조건일 뿐이고 검수 시에도 소프트웨어와 문서가 일치하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F사는 고객의 이러한 과도한 문서 요구에 프로젝트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정작 개발할 시간이 줄어 들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G사는 패키지를 수정해달라는 고객의 요구로 인해서 회사가 어려워졌다. 

G사 고객들은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바꿔달라는 요구가 많다. G사도 이런 고객의 요구사항에 빠르게 대응하다 보니 소스코드가 여러 벌이 생겼다. 소스코드도 그냥 복사를 해서 고객별로 관리를 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개발 속도는 점점 늦어졌다. 기능 하나를 수정해도 여러 벌의 소스코드에 적용을 해야 했다. 

이렇게 소스코드를 통합(Merge)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나중에는 개발하는 시간보다 소스코드 통합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결국 G사는 문을 닫았다. 이는 고객 탓만은 아니고 눈앞의 이익만 쫓는 G사의 무분별한 단기 대응도 문제였다. 

요즘 정부도 민간도 소프트웨어 환경을 개선해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돈을 내고 있는 고객들은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고객만의 탓은 아니다. 수십 년간 우리나라 개발회사들에 길들여진 것뿐이다. 

이렇게 소프트웨어 환경이 망가지면 결국 고객들도 손해를 본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많이 망가지고 나면 제대로 쓸만한 국산 소프트웨어가 줄어들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싸고 문화도 잘 맞지 않는 외국의 소프트웨어를 써야 한다. 

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야 한다. 사실 별 뾰족한 답도 없는 문제지만 결국 고객을 바꾸는 것은 개발사들이다. 계획적인 개발을 하려고 해도 경쟁사에서 고객 밀착형 서비스를 한다고 하면 경쟁에서 밀리고 만다. 

결국 이런 소프트웨어 품질보다 노예식 개발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전략은 모두를 다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특히 시장을 주도하는 선두 주자들부터 소프트웨어 환경을 건전하게 바꾸어 나가면 고객의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4년 2월 6일 목요일

자신의 코드에 발목 잡힌 개발자들

필자는 국내외 다양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는 여러 개발자를 만날 기회가 자주 있고 각 회사의 개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 중에서 3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다양한 일을 하지 못하고 하던 일만 계속하게 되는 현상에 관한 것으로,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이지 싶다.
 
국내 A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100명이 넘는 업계 1위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 개발자들은 철저히 자신의 소스코드가 있어서 몇 개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서로 공동으로 개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프로젝트도 거의 혼자서 담당하며 한 사람이 여러 프로젝트를 맡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소스코드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소스코드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간 정보 교류도 매우 적다. 이슈관리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공유 문화도 매우 취약한 회사다. 

그래서 개발자가 한 명만 아파서 못나와도 프로젝트에 큰 타격이 생기며 다른 개발자가 도와주기도 쉽지 않다. 개발 일이 한쪽으로 몰려도 어차피 소스코드별로 개발자가 정해져 있어 놀고 있는 개발자가 있어도 도와주지 못한다. 

부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신입 개발자가 입사해 제대로 일하려면 수개월 정도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기존의 소스코드를 익히고 기반 지식을 공부하는데 수개월이 걸린다. 개발자가 퇴사할 때마다 개발팀은 큰 곤욕을 치르지만 경영진은 개발자를 아끼지 않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한다. 잦은 릴리즈와 고객 밀착형 유지보수 서비스로 개발자들은 이미 지쳐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속된말로 '몸빵'이라고 한다. 개발사가 개발을 주도를 하지 못하고 고객에 끌려 다니면서 그때 그때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계획으로 개발을 하지 못하고 격무를 피하기 어렵다. 아키텍처도 깔끔하게 유지하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컴포넌트 오너'라고 하는 현상인데 컴포넌트(Component)별로 주인이 정해져 있어서 다른 사람은 못 건드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A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많은 개발자들이 자신이 작성한 소스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 분야에서 계속 땅굴을 파 내려가 경험의 폭이 좁아지고 고급 개발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한쪽 분야의 숙련공이 될 수 있어도 고급 개발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국내 B사는 개발자만 수백명에 달하는 누구나 아는 회사다. B사는 이미 이런 문제를 겪었고 이를 타개하고자 개발자풀 제도를 시도했다. 과거에는 개발자를 팀별로 나눠서 팀내에서 주어진 일을 했는데 개발자 풀 제도를 통해 비효율적인 인력운영을 효율적인 체계로 바꾸고자 했다.

팀구분 없이 개발자를 한군데 모아 놓고 프로젝트 관리자가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개발자를 선별해서 개발을 진행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개발자는 다시 개발자풀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잘 활용하면 팀의 구분 없이 최적의 개발자를 투입할 수 있고 한쪽 프로젝트에 일이 쏠려도 개발자들이 도와주기 용이하다. 개발자들은 회사의 여러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식을 공유하게 된다. 

취지는 좋으나 철저한 준비과정 없이 조직만 그렇게 바꿔 놓으니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각자 전문분야가 다르니 다른 개발자를 투입해서는 일이 안됐고 결국 해당 일을 하던 개발자를 투입해야 했다. 매트릭스 조직이라 프로젝트 관리자와는 별도로 팀장이 따로 있으니 프로젝트에 특정 개발자가 필요해도 팀에서 개발자를 내놓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을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원래 개발자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혼란을 한참 겪은 B사는 결국 개발자 풀 제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조직이나 프로세스만 바꿔서 역량을 향상하거나 효율적인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경영진이 이해하지 못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F사의 경우는 개발자가 수천명에 달하는 글로벌회사다. 개발자가 새로 입사를 하면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실제 서비스가 되고 있는 시스템 버그를 고쳐야 한다. 입사 첫날부터 개발에 직접 투입되는 것이다. 신규 입사자 중에는 해당 개발언어로 개발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버그를 고치는데 문제가 없다. 어차피 경험한 개발언어를 보고 개발자를 뽑은 것이 아니고 기초가 튼튼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개발자들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멘토가 있기는 하지만 옆에 끼고 계속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F사 신규 입사자에게는 소스코드가 저장된 SVN(Subversion) 주소와 버그관리시스템인 Bugzilla 주소를 통해  처리할 버그가 할당된다.  아무도 버그를 고치는 방법과 알아야 할 지식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 스펙과 설계문서에 접근할 수 있고, Bugzilla를 통해서 기존 개발자에게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신규 입사자는 소스코드를 분석해 버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스코드의 각 라인 별로 언제 누가 수정을 한 코드인줄 즉시 알 수 있고 소스코드를 수정할 당시의 관련된 이슈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후 신규 입사자는 SVN에 고친 소스코드를 등록하기 전에 코드리뷰시스템에 등록을 해서 리뷰를 받아야 한다. 간단한 버그 수정은 아무 문제 없이 코드리뷰를 통과하겠지만 몇몇 이슈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코드리뷰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버그를 고치거나 작은 기능을 구현하는 일은 신규 개발자들이 처리한다. 실력을 인정 받으면 점점 어려운 일을 할당 받는다. 고참 개발자들은 어려운 일이나 스펙과 설계 작업을 주로 진행한다. 개발자는 언제든지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물론 자신이 관심 있는 프로젝트에 지원할 수도 있다. 많은 개발자가 퇴사해도 서비스에 별 문제가 없고 대부분 즐겁게 일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구멍가게를 할 것이 아니라면 컴포넌트 오너식 개발은 금방 한계에 다다른다. 혼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F사처럼 개발을 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도 공유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혼자 개발해도 적절한 공유와 문서화를 했을 때 개발이 더 빠른 이유다. 어찌 보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다양한 경험 없이 한 우물만 파내려가면 우물 속 개구리가 되고 말 것이다. 

소프트웨어 회사 개발팀의 꽃은 아키텍트다. 개발자들이 다같이 각자의 우물을 파내려 가는 환경에서는 뛰어난 아키텍트가 나오기 어렵다. 뛰어난 아키텍트가 없는 회사의 미래는 뻔하다. 2층짜리 집은 근근히 만들 수 있어도 100층짜리 빌딩을 어찌 아키텍트 없이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국내 1등은 가능해도 딱 거기까지가 한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식의 개발 환경에서는 개발자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야근을 반복해야 하며 고참이 되도 계속 과거의 코드에 발목을 잡혀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고참이 더 바쁜 회사는 이런 함정에 빠진 경우다. 이직을 하면 고리가 끊어지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똑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를 해결하는 기가 막힌 한가지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공유문화를 비롯해서 성숙된 개발문화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해결 된다. 개발문화를 소홀히 생각하고 프로세스만 강화해서는 절대로 F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다같이 성숙한 개발문화에 정착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다. 

2014년 2월 2일 일요일

CMMI는 회사를 망칠 수도 있다



필자는 최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공학 역량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를 적용하여 오히려 어려워진 H사 직원 S씨를 만났다. 

그동안 SI회사 등 여러 곳에서 CMMI를 적용하였던 회사의 직원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SI회사도 아닌 이 회사의 사례는 독특해 칼럼에서 소개할까 한다. 

CMMI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CMMI에 대한 오해와 서투른 기대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이는 CMMI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방법론에도 똑같이 해당한다. 

H사는 최근 촉망받는 분야의 서비스를 하는 회사다.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 작지 않는 회사지만 개발에 관련된 변변한 문서가 하나도 없다. 스펙, 설계서 뿐만 아니라 문서는 전무하다 시피하다. 개발 프로세스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 개발을 하고 있었다. 

고참 개발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코딩만 꽤 할 줄 알았지 개발 프로세스가 뭔지도 모르고 협업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에 H사 대표는 이대로는 안되겠으니 컨설팅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선택한 컨설팅 회사가 CMMI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국내 회사인 P사였다. 

P사는 CMMI 레벨3를 적용하자고 제안했고 직원들은 회사 내부에서 관련 교육을 받았다. 외부에 나가서도 수차례 교육을 받았다. P사는 회사의 기존 프로세스와 그나마 있었던 문서를 분석해서 CMMI 레벨3 기준으로 개발 프로세스를 만들고 수십가지의 문서 탬플릿을 만들어서 제안했다. 

실제 프로젝트에 이 프로세스와 문서 탬플릿을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요구하는 수많은 문서를 만들어내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촉박한 프로젝트 일정에 문서까지 추가로 만드는 것은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이에 개발자 및 사업부에서는 반발이 매우 심했고, CMMI를 적용하느라 몇개 프로젝트는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어처구니는 없는 것이었다. 문서에 적어야 하는 기능의 개수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능하나에 서로 연결해서 작성해야 하는 문서가 많아서 전체 문서 양이 매우 많았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500개 기능인 프로젝트에서 문서에는 100개만 적으면 문서 개수가 많아도 전체 작성해야 하는 문서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요구하는 문서와 프로세스를 따랐다고 한다. 정해진 일정에 요구하는 문서를 만들어 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CMMI를 적용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S씨는 해당 프로젝트에서 20여가지 문서를 만들었지만 실제 프로젝트에 쓰인것은 SRS와 WBS 문서 2개 밖에 없다고 했다. 나머지 20여가지 문서는 컨설팅 회사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만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프로젝트 중간이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나머지 문서들은 볼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H사는 그 뒤로 개발역량 향상은 커녕 CMMI의 직접적인 영향을 아니겠지만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론적으로 CMMI를 통해 SW공학의 성숙도를 측정하고 역량을 향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와 잘못된 적용 방식이 국내에서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역량 수준이 한참 못미치는데 억지로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문서를 만들어내고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역량이 향상될리 없다. 이런 일이 빈번하여 한국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CMMI가 필요한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국방일 것이다. 국방 프로젝트는 1달러짜리 나사를 사기 위해서 프로세스와 문서를 적용하여 50달러를 투입해야 할 때도 있는 프로젝트다. 민간 프로젝트와는 성격이 다른 중요도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그 외에도 CMMI 인증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다. 역량이 안되더라도 비즈니스 목적으로 CMMI를 적용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고 영업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단기간에 CMMI를 적용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실전적인 방법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 더 낫다. 

적당할 예 일지는 모르겠지만 타이거 우즈가 CMMI 레벨5 수준으로 골프를 친다고 가정하자. 타이거 우즈는 CMMI 레벨5로 골프를 치기 위해서 골프 스윙시 25가지의 절차와 고려사항을 눈깜짝할 사이에 적용해서 공을 친다. CMMI 레벨5에서는 그 25가지의 절차를 잘 분석해 놨다. 

나는 주말골퍼인데 코치가 그 25가지 절차를 따르면 타이거우즈처럼 골프를 칠수 있다고 한다. 1년을 그렇게 연습한다고 타이거 우즈처럼 골프를 칠 수 있을까? 타이거 우즈는 이미 성숙도가 높고 몸에 완전히 베어 있어서 25가지의 절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것을 따라하다가는 오히려 골프를 더 못치게 된다.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씩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 또한 대부분의 실용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는 그 수준까지는 필요하지도 않다. 

사대주의도 아니고 바다건너의 멋진 모델에 현혹되는 사례가 유난히 우리나라에는 많은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 오래 개발한 개발자들에게 물어봐도 CMMI는 관심도 없고 주변에 적용한 회사는 본적도 없다고 한다. 그만큼 실전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개발을 지향하는 곳이라면 성숙된 개발 문화와 개발 본연의 역량 향상에 힘을 쓴다. 뛰어난 아키텍트 발굴도 그 일환이다. 

이는 비단 CMM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방법론도 마찬가지다. 그자체로는 훌륭할지는 몰라도 적절한 곳에 적용을 해야 하며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것인지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필자는 좀더 효율적으로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성숙된 개발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용적이고 실전적이지 않은 모든 절차와 프로세스는 짐이 될 뿐이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실리콘밸리 개발자 눈에 비친 한국 SW회사

얼마 전 실리콘밸리의 한 개발자 B씨를 만나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친구인데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 미국 대학을 나와 실리콘밸리에서 20여년간 개발자로 일을 했으며 10여년간은 몇몇 회사에서 CTO로 있었던 친구다. 

B씨는 최근에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가칭 A사)와 많은 교류를 한 모양이다. 한국 회사에 자사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서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오가며 수개월간 한국 개발자들과 같이 개발을 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A사에 대해서 느낀 점을 필자에게 얘기를 해줬는데 A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러 회사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내용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B씨는 일단 처음에 A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규모가 꽤 큰 서비스인데 시스템에 버그가 너무 많고 문제가 자주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의 야근도 너무 잦았다. 또 스크럼을 도입해 개발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효과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만큼 B씨는 A사가 스크럼이든 설계든 개발 절차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형식만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나는 B씨에게 “설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B씨는 “설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콤포넌트를 잘 나누는 것”이라는 당연한 얘기를 했다.

B씨는 계속 얘기를 했다. 설계에 UML을 사용했는데 보통 UML은 필요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칠판에 설계를 하다가 고치기를 반복한 후 사진을 찍어서 문서에 포함한다. 툴을 이용해서 다시 그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마지막 버전을 툴로 그리기도 하는데 정해진 툴도 없다. UML을 이용해서 쓸모도 없는 다이어그램을 잔뜩 만든 문서는 개발에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 툴을 이용하면 칠판보다 고치기가 어렵고 다이어그램을 많이 그릴수록 고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 바로 고칠 수가 없다. 또 A사 설계는 콤포넌트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나눠서 협업하기 어려웠고 반대로 설계 내용은 너무 상세해서 오히려 비효율적이었다. 

나도 동감을 했다. 개발자가 알아서 할 부분까지 설계를 할 필요는 없다. 겉보기에는 A사의 설계서가 실리콘밸리의 한 개발자가 칠판에 끄적거린 설계서보다 멋져 보이고 전문적인 것 같지만 실전에선 훨씬 비효율적이다.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소프트웨어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설계 원리와 진의를 모르고 많은 다이어그램과 상세한 설계서는 식제 개발을 할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회사들이 UML 등을 이용해 완벽한 설계서를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B씨가 A사에 대해 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애자일(Agile)을 적용한 방식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거의 대부분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적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애자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해오던 방식과 비슷하다. XP를 도입한 회사도 있고 스크럼을 쓰는 회사도 있는데 회사마다 필요한 것을 활용하고 있다. B씨 회사는 XP의 페어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과 TDD를 사용중이다. 

과거 프로젝트에서는SRS를 썼는데 지금은 TDD로 바꿨다. 테스트는 거의 자동화 되어 있고 별도 테스터가 없어도 시스템에 버그는 거의 없다. A사의 경우 컨설팅을 받아 애자일을 적용했는데 들어보면 별로 애자일스럽지 않아 보인다. 마케팅적으로 요구사항이 신속히 바뀔 뿐인 것 같다. 

시스템이 복잡하여 야근도 잦은 것 같다. 또 개발자의 자유도도 낮아 보인다. 쓸데없는 문서도 많이 만들어야 하고 테스트도 오래 걸린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에는 항상 버그가 잔뜩 있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비싼 툴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스타트업 에 많이 다녔는데, 한국 회사처럼 툴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서브버전(Subversion)과 트랙(Trac)만 쓰고 있는데 회사를 지금 시작했다면 Git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굳이 지금 서브버전을 Git로 바꿀 생각은 없다. 

나머지 필요한 툴은 간단한 스크립트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그에 비해 A사를 비롯해서 많은 한국 회사들은 일단 툴을 많이 사용한다.  비싼 툴을 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회사 역량에 비해서 툴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다. 툴은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A사는 직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했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노트북을 집에 가져가서 일을 하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다니는 개발자들은 거의 노트북을 집에 가져가서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일을 한다. 개발자마다 다르지만 그 친구는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지만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을 한다고 한다. 

A사는 야근도 꽤 많이 하지만 집에 가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한국의 모든 개발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실리콘밸리와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물론 한 개인이 한 회사를 보고 느낀 점을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B씨와 나눈 얘기들에서 생각해 볼 요소는 많다. 국내 여러 기업이 실리콘밸리의 개발문화와 개발방식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대부분 원리와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고 수박 겉핧기 식으로 형식만 흉내를 내고 있다. 

설계는 하지만 설계를 왜 하는지를 잘 모르고 애자일을 적용하면서 그 원리를 모르고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흉내를 내는 것이다. 원리는 같지만 회사마다 적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남들을 보고 흉내 내거나 인터넷이나 책을 보고 적용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단순 흉내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그 진의를 파악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주변에서 흔히 "남들은 어떻게 하나요?", "템플릿(Template)을 가져다 주면 해볼께요.", "샘플을 보여주세요."와 같은 얘기를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설계서 샘플을 가져다가 흉내를 내면 자칫 아니 한만 못한 경우도 많다. 샘플이 득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샘플보다는 이걸 왜 하는지 원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주변에 멘토가 될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글은 ZDNet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