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젝트 일정에 대해서 항상 "일정은 개발자가 산정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왔다.
그런데 많은 개발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자신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일정은 위에서 확정이 되어서 내려오기 때문에 개발자가 정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항상 촉박한 일정을 지시하기 때문에 스펙이나 설계는 작성할 수도 없고 코딩부터 한다고 한다. 자신들도 체계적으로 개발을 하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한다.
경영진이 일정을 제시하는 것과 개발자가 일정을 산정하는 것은 완전히 상반된 얘기가 아니다.
경영진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정이 필요하다. 경영진이 일정을 정했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정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는 들어가야 할 시간은 다 들어간다. 자칫 서두르다가 더 느려질 수 있다.
경영진이 지시한 일정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일정을 제시한 것이다. 이 일정은 변경해도 되는 경우도 있고 절대 변경하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 일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발자가 일정을 산정하는 것이다.
일정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스펙을 제대로 쓰고 1,2일 단위로 상세 일정을 개발자가 산정해야 한다. 이쯤되면 전체 일정에서 20~30%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 된다.
이때 상당히 정확한 일정이 나오면 경영진이 지시한 일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이 일정이 경영진이 제시한 일정과 차이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촉박한 일정이라면 스펙을 조정하거나, 개발자를 더 투입할 수 도 있다. 아직 설계, 구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펙 조정이 가능하고 개발자를 추가 투입해도 상당히 효과가 있다.
스펙도 조정이 안되고 개발자 추가투입도 어렵고 무조건 밤을 새가면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면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 알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밀어 붙인다고 가능한 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펙이 끝날 때까지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고 스펙을 쓰는 도중에도 일정이 촉박할 것으로 예상이 되면 리스크관리를 통해서 미리 대비를 할 수 있다.
경영진이 촉박한 일정을 지시했다고 해서 이것을 돌판에 새긴 절대불변의 지시사항으로 생각하고 코딩부터 시작하면 나중에 할 말은 다음과 같은 것들 밖에 없다.
- 매일 밤새면서 일했는데 못 지켰습니다. 원래 불가능한 일정이었어요.
- 코딩은 끝났는데, 테스트는 못했습니다.
이런 핑계를 대도 사실 코딩도 안 끝난 경우도 많다. 코딩은 가능하면 늦게 시작해야 기능을 빼거나 변경하기 쉽고 더 일찍 끝낼 수 있다.
경영진은 개발자들이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일정을 지켜주기를 원한다. 그래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스펙을 적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스펙을 적어야 일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
경영진이 6개월의 시간을 제시했다면 앞만보고 마구 달리는 것보다는 가장 빠른 시간에 6개월안에 프로젝트를 끝내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경영진은 이런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개발팀을 후원할 것이다. 가장 빠른 기간에 프로젝트를 일정에 맞게 끝낼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하는 방법이 바로 적절한 스펙을 작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