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발문화 이야기는 '서열이 지배하는 조직문화'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서열을 매우 중요시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나이를 비교하고 서열을 정한다. 회사에서도 대리, 과장, 부장이 되려고 열심히 일한다. 직급에 따라 업무가 달라지고 급여도 서열에 비례한다. 물론 많은 변화가 있어 왔지만 뿌리깊게 자리 잡은 서열문화의 뿌리는 여전히 튼튼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서열 문화는 조직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문제와 생산성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직급에 따라 서열화 되며 주로 윗사람이 일을 시키고 아랫사람은 시키는 대로 일하는 형태가 많다.
이러한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비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적합하지 않다. 자율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자칫 창의력을 저해하고 수동적인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합한 효율적인 조직은 수평적인 조직이다. 각자 역할을 나눠서 일을 하지만 상하관계는 아니다. 업무도 그렇게 수평적으로 전문화된다. 역할은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세분화되기도 하고 크게 몇 개로 나뉘기도 한다.
큰 프로젝트에서는 아주 많은 역할로 나뉜다.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프로그래머, 프로젝트 매니저, 프로덕트 매니저, 리스크 매니저, 빌드 엔지니어, 테크니컬 라이터 등 여러 역할이 있지만 이들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 전문화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이들 역할과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수직적인 관계는 그대로 유지가 된다. 윗사람이 시키고 아랫사람은 지시에 따르는 스타일로 일을 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역할 구분 없이 윗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는 신참이나 고참이나 모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고참이 되면 그냥 시니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과장, 부장이나 연차에 따라 책임, 수석이 되는 것은 서열 중심의 조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회사 대표 개발자에게는 수석 사이언티스트(Chief Scientist), 펠로우 엔지니어(Fellow Engineer) 등 특별한 타이틀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그 외에도 태크니컬 스티어링 커미티(Technical Steering Committee)나 아키텍트 그룹(Architect Group) 등의 조직이 있을 수 있지만 능력과 경험에 따른 역할의 구분이지 이들을 윗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서간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서열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합리적인 결정보다 서열에 의한 결정이 종종 발생한다. 대리급 개발자가 영업부서의 부장에게 직급으로 눌려서 합리적인 결정을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열문화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개발자의 전문성 향상을 저해한다.
최근에 몇몇 젊은 회사에서 서열 파괴 시도를 하고 있다. 직원들간 직급을 모두 없애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공서열을 파괴 했을 뿐이지 나이 어린 사람이 또 윗사람이 되어서 서열화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서열을 없애고 조직을 수평화시키는건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전문화되고 전문가를 우대하는 문화도 정착이 되어야 한다. 각자 역할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고 관리자를 넘보지 않아도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특수성이 강하다. 엄청나게 복잡한 지식산업이면서 예술성이 강하다. 서열에 의한 역할분담이나 지시에 의한 업무 진행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합하지 않다. 서열보다는 각자의 특성, 실력에 따라서 수평적으로 일을 나눠서 하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수평적인 조직이라도 다 같이 똑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참은 더 어려운 일을 하고 리뷰도 많이 한다. 대우도 서열보다는 실력에 의해서 차별화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개발이 투명화 되어 모든 개발자의 실력과 성과가 만천하에 드러나야 한다.
결국 서열을 없애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 방식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조직뿐만 아니라 프로세스, 시스템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제도만 바꿔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문화는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만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니다. 연관된 모든 문화를 같이 바꿔야 하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마인드이다. 그래야 꾸준히 변화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변화는 1,2년에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본 칼럼은 ZDNet Korea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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